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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육청 2013년 1월 전국 교육청 최초로 오피니언리더를 위촉하여 다양한 시각의 글을 홈페이지, 소식지 등에 싣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교육 관계자, 작가 등이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 1회 정도 홈페이지에 글을 탑재합니다.

글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경우 담당자 전화(051-860-0222)나 메일(two2man@korea.kr)로 알려주시면 해당 오피니언리더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글읽기 : 글 쓰는 고통, 안 쓰는 고통 상세 정보
글 쓰는 고통, 안 쓰는 고통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 2020.09.17
글 쓰는 고통, 안 쓰는 고통

동길산(시인)

글 동네에 이름을 올린 지 31년. 초심에서 멀어졌고 감성은 무뎌졌다. 글 만드는 요령은 늘었어도 글에 담긴 기운은 식었다. 나에게 글은 곧 밥이니 쓰긴 쓰되 고봉밥 먹은 만큼이나 배부른 글은 언제 써 봤는가 싶다.
학생 때 치기가 그립다. 그때도 고료는 짧은 시보다 긴 산문이 많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만 쓰지 산문은 쓰지 않겠다고 치기를 부렸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장을 했으면서도 대학을 국문과로 가지 않고 글과 무관한 과로 간 이유도 치기라면 치기였다. 문학을 학교 다닐 때만 하지 않고 평생 하겠다는.
그때 지은 시 한 편이 생각난다. 대학 신문에 실린 시 고료로 술을 마시면서 쓴 시다. 학교 근처 골목식당에서 술 한 잔 글 한 줄, 그렇게 썼다. 언뜻 읽으면 고료가 얼마 되지 않는 ‘싸구려 시’에 방점을 찍은 것 같지만 내심은 정반대였다. 시 써서 고료를 받은 게 그저 뿌듯했다. 치기였고 호기였다.

시를 팔아
두 병 소주에 생두부 한 접시 1,250원
그래도 왠지 즐거워
마구잡이로 두드리는 젓가락 장단
(…)
술도 모자라고 악도 모자라고
모두 게워 내기에는
싸구려 시마저도 모자라고
- 동길산 시 ‘어떤 일’

호기는 졸업 후에도 이어졌다. 직장 다니면서도 시는 가까이 두었고 산문은 멀리 두었다. 대학노트 한 권이 다 차고 두 권을 시작할 무렵도 산문은 낱장 정도였다. 그러다 등단했다. 시의 세계는 살벌했다. 가차가 없었다. 약간의 틈만 보여도 물렸다. 내가 쓰는 시는 아마추어 수준이건만 겁도 없이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시에서 멀어졌다. 내가 생각한 시 세계와 현실의 시 세계는 달랐다. 시의 무게에 짓눌렸고 그게 싫어서 거리를 두었다. 그동안 쓴 시로 첫 시집을 내고 나서는 더 그랬다. 시가 무서워졌다. 산문 청탁서는 앞면이 보이게 놔뒀고 시 청탁서는 뒤집어서 놔뒀다. 갓 등단한 신인에겐 원고청탁은 어쩌다 오는데도 그랬다.
그랬다. 그때는 시가 고통이었다. 청탁받은 시는 차일피일 미뤘고 스스로 쓰는 시로 채우던 대학노트는 어디에 뒀는지도 몰랐다. 시가 고통스러워 술을 퍼마셨고 낚시하러 쏘다녔다. 지금 사는 촌집도 낚시를 다니다가 얻었다. 시를 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 줬으며 지인들은 나를 시인이라고 주변에 소개해 줬다. 시인으로 행세했지만 산문 청탁서는 여전히 앞면이었고 시 청탁서는 뒷면이었다.
즐겁지는 않았다. 술을 마셔도 그때뿐이고 낚시하러 다녀도 그때뿐이었다. 어느 순간에 이르자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글을 쓰는 것도 고통이지만 쓰지 않는 것 역시 고통이었다. 중압감은 쓰지 않는 쪽이 훨씬 심했다. 자다가도 가위에 눌렸고 송곳에 찔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자다가도 일어났고 자다가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시에 다시 다가갔고 시에 손을 내밀었다.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간절한 데서 온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서 고통은 온다. 나는 그랬다. 시에 가까이 가고 싶은데 가까이 가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다. 간절했기에 고통은 더 컸다. 시만 그럴까. 코로나 19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학교가 멀어진 이즈음. 왜 아니 고통스러울까. 그러나 믿는다. 고통이 클수록 간절함은 크고 간절할수록 가까워진다는 걸. 그렇긴 해도 배부른 글은 언제 써 봤는가 싶다.

<오피니언리더의 의견은 부산교육 정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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