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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육청 2013년 1월 전국 교육청 최초로 오피니언리더를 위촉하여 다양한 시각의 글을 홈페이지, 소식지 등에 싣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교육 관계자, 작가 등이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 1회 정도 홈페이지에 글을 탑재합니다.

글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경우 담당자 전화(051-860-0222)나 메일(two2man@korea.kr)로 알려주시면 해당 오피니언리더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글읽기 : 이양하와 부산 상세 정보
이양하와 부산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 2020.06.29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생각은 그랬다. 한국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은 <신록예찬> 이양하고 외국에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이었다. <신록예찬>은 달달 외웠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안 그래도 사춘기이던 나를 더 깊은 사춘기로 빠뜨렸다. 둘 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산문이었다.
사춘기는 나를 교과서 바깥으로 내몰았다. 거기에 답이 있지 싶었다. 학교 근처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쏘다녔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인이 낸 시집을 샀고 난해한 철학책을 샀다. 드물게는 산문집도 샀다. 그럭저럭 사춘기는 지났지만 돈이 좀 모이면 책 사는 버릇은 대학 가서도 여전했다. 그렇게 산 헌책이 대학교수 17인 수필집 《서재여적(書齋餘滴)》이었다.
《서재여적》을 산 건 오로지 이양하 때문이었다. 이양하는 살아생전 수필집을 단 한 권만 내었다. 그만큼 글에 결벽증이 있었다. ‘10리 바다도 원고지 한 장보다 망망하지 않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양하 수필이 네 편이나 거기 실려 있었다. 냉큼 샀다. 책이 나온 해는 1958년. 이양하는 그때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였다.
이양하는 서울대 교수를 20년 가까이 지냈다. 마흔 한둘이던 1945년부터 예순 직전인 1963년까지 서울대에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대학들도 부산으로 피난 왔다. 임시수도 부산 대신동에 전시연합대학을 열고 가건물과 창고, 천막 교실에서 강의했다. 이양하도 피난 와 부산에 살림을 차렸고 매일매일 대신동으로 출근했다.
‘부산 살림 1년 반 아주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서재여적》 네 편 가운데 한 편은 부산 피난 생활을 회고한다. <길에 관하여>가 그것이다. 글 맨 앞에 부산에서 1년 반을 살았다고 밝힌다. 전시연합대학이 1951년 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열렸으니 앞뒤 시간을 고려하면 꼭 그만큼만 부산에 있었던 셈이다.
이양하는 부산 생활에 넌더리를 내었다. 길은 먼지투성이였고 악취가 진동했다. 먼지는 얼마나 심했던지 ‘바람이 일든가 하면 먼지 길길이 일어서 기둥도 되고 턴넬도 되’었다. 동래 뒷산 길 없는 비탈을 내려오다 발을 삐고 엎어지는 불상사도 겪었다. 부산 피난살이 고단함이 ‘한 줄 건너 한 줄’이 아니라 줄줄이 밴 수필이 <길에 관하여>다.
‘여기 예외 하나가 있다. 그것은 구덕산과 구덕산 남쪽 산 사이의 저수지 있는 데로 넘어가는 한 오리 길이다. 이 고개 이름은 알지 못하나 학교에 가느라고 대신동 길을 걸어가면 항시 빤히 쳐다보이는 고갯길인데 이 길만은 어쩐지 아름답게 보인다. 이 고갯길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 아닌 모양이어서 어떤 날 이 길 얘기를 같이 가던 학생에게 하였더니 그 학생은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희망의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양하도 마음 붙일 구석은 있었다. 구덕산 고개, 구덕고개였다.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지만 서울로 이어지는 고개였고 희망으로 이어지는 고개였다. 하루아침에 피난민으로 내몰린 삼팔따라지들. 그들이 감내했을 고통이며 억하심정은 피난 학생도, 피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감내하고 극복했으며 마침내 희망의 길로 나아갔다.
코로나19가 오래 간다. 끈질기다. 학교 안도 그렇고 학교 바깥도 그렇고 고단함이랄지 피로도가 높아간다. 마음 붙일 구석은 있다. 끝나지 않는 전쟁이 없듯 이 또한 끝나리라 믿는다. 마스크 사려고 섰던 긴 줄이 지나간 얘기가 되고 있듯 코로나19로 겪는 이 모두도 언젠가는 지나간 얘기가 되리라 믿는다. 감내하고 극복해 마침내 희망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오피니언리더의 의견은 부산교육 정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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