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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육청 2013년 1월 전국 교육청 최초로 오피니언리더를 위촉하여 다양한 시각의 글을 홈페이지, 소식지 등에 싣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교육 관계자, 작가 등이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 1회 정도 홈페이지에 글을 탑재합니다.

글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경우 담당자 전화(051-860-0222)나 메일(two2man@korea.kr)로 알려주시면 해당 오피니언리더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글읽기 : 부산의 진짜성, 부산진성 찾기 상세 정보
부산의 진짜성, 부산진성 찾기
작성자 박창희 작성일 2019.10.18
부산의 진짜성, 부산진성 찾기

박창희 (칼럼니스트, 스토리랩 수작 대표)

부산 동구 범일동에는 자성대(子城臺)라는 아담한 공원이 있다. 도심 속 귀한 역사공원이지만 그 의미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안내판을 보자.
‘부산진지성(支城),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7호. 일명 자성대.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1593년(선조 26) 일본군은 부산진성의 성벽을 헐어 증산 왜성을 쌓고 동쪽에는 자성대 왜성을 쌓았다. 임란이 끝난 뒤 자성대 왜성을 일부 수리하여 부산진 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전란 와중에 일본군이 부산포 부근에 자성(子城)을 만들고 산정에 장대(將臺)를 세운 것이 ‘자성대’의 탄생 배경이다. 자성대에는 지금도 왜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자성(子城)의 모성(母城)은 동구 좌천동 증산공원 일대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에는 부산진성(부산포성)이 자리했고, 조선에 정착해 눌러 사는 항거왜인(恒居倭人)이 있었다. 한때는 경상좌수영도 들어서 있었다.
부산진성은 이름부터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부산진성(釜山鎭城) 외에 부산진 지성(支城), 부산성(釜山城), 부산성의 내성(內城)과 외성(外城), 모성(母性)과 자성(子城), 자성대(子城臺), 환산성(丸山城), 소서성(小西城)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조선과 동래, 일본군 점령(왜성)의 역사가 중첩돼 있다.
부산진성은 크게 세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조선 전기에 쌓은 부산포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둘레 1,689자(약 520m), 높이 13척(약 4m)의 견고한 성을 쌓았는데, 바닷물이 남문 부근까지 찰랑거린다고 적고 있다. 이때 남문은 현 정공단 외삼문 쪽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는 정발 장군이 부산진성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부산진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전투가 벌어졌던 곳은 오리무중이다. 부산진성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결과다.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부산진성의 돌을 옮겨 자성대 왜성을 쌓았다. 일본 측에선 자성대를 그들 선봉장의 이름을 따 고니시성(少西城), 둥근 산에 성을 쌓았다 하여 마루야마성(丸山城)이라 일컫기도 한다.
임란 막바지엔 지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만세덕(萬世德)이 주둔했다 하여 자성대를 ‘만공대(萬公臺)’라고도 부른다. 명나라군으로 참전해 조선에 귀화한 천만리(千萬里) 장군이 다녀갔다는 설도 있다. 자성대가 군사 외교적 전략 요충지였다는 말이다.

일본군과 명군이 물러난 뒤, 조선은 자성대 왜성 위에 부산진성을 다시 쌓는다. 당시 성의 둘레는 506m, 높이가 3.9m였다. 동헌을 짓고 동문을 진동문(鎭東門), 서문을 금루관(金壘關), 남문을 종남문(鍾南門), 북문을 구장루(龜藏樓)라 하였다. 성 안팎에 19동의 건물이 있었다니 규모가 만만치 않다.
현재 서문 문루에 세워진 돌기둥은 자성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요인후(南邀咽喉) 서문쇄약(西門鎖鑰).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라는 뜻이다. 국방 유적으로 이보다 강한 메시지가 또 있을까 싶다. 이 돌기둥은 원래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는데 1975년 자성대 정화 공사 때 옮겨졌다.
성남(城南)초교는 조선 후기 부산진성의 서문과 성곽이 있던 자리다. 성동(城東)중학교, 부산진시장, 남문(南門)시장 등도 모두 부산진성이 남긴 자취다. 자성대 동편에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영가대를 복원한 것은 다소 생뚱맞긴 해도 부산진성의 역사성을 반영한 결과로 이해된다.

자성대를 새롭게 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자성대를 부산(富山/釜山) 지명 유래지로 보기 때문이다(심봉근, 나동욱 박사 등 주장). 지금까지 부산(釜山)이란 지명은 동구 좌천동 ‘증산(甑山)’에서 유래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자성대설이 대두되면서 통설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자성대와 부산진성의 의미와 가치가 한층 부각되는 모습이다.

자성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성의 자성이 아니라 부산진성의 본성임을 알 수 있다. 부산진성 복원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다. 부산진성은 부산 역사의 웅혼한 자취이면서 부산의 근원을 더듬게 하는 역사자산이다. 부산의 정체성도 바로 세울 수 있다.
쉬운 것부터 바로 잡아보자. 자성대 이름을 ‘부산진성’으로 부르는 것이다. 아예 ‘부산성’이라 불러도 좋겠다. 일본이 왜곡한 ‘부산성’을 이제 찾아와야 할 때다.

얼마전 범일동 자성고가교가 50년만에 철거됨으로써 부산진성을 이루는 경관 한 곳이 트였다. 1969년 건설된 자성고가교는 옛 부산진성을 바라보는 위치다. 자성고가교 철거를 부산진성 제모습찾기의 신호탄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왜 아니랴.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도, 동서남북 성문 터를 확인하고 왜곡된 지명을 바로 잡아 제 이름을 찾아주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러다보면 부산의 진짜성, 부산진성이 살아 올 것이다.


※ 오피니언리더의 의견은 부산교육 정책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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